2009-09-25

감상] 경건의 시간을 갖는 법

경건의 시간을 갖기 위한 여러 가지 조건 및 방법들이 있다. 첫째로 가능한 일정한 장소를 정해서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고 익숙한 장소가 중요하다. 둘째로 맑은 정신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몸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앉아서 하든 서서 하든, 왔다갔다 걸어 다니면서 하든 방법은 중요치 않다.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자세일 것이다. 셋째로 실재하시는 하나님, 내가 기쁘게 교제를 나눌 하나님을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기쁨의 교제가 최우선이기에 성급하게 나의 요구사항을 주님께 들이미는 자세는 접어야 한다. 넷째로, 성경 읽기와 기도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특히 성경을 읽고 묵상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도를 이어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섯째, 마음의 집중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한다. 중요한 일 등이 떠오른다면 억지로 누르지 말고, 그에 관해 간략하게 메모를 하고 그를 위해 기도를 하고 넘어감으로써 다시 원래 하던 묵상에의 집중을 되찾을 수 있다. 여섯째, 기도 목록을 사용함으로써 목표 없이 중언부언 기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목록의 노예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도 목록은 도움을 주는 종이 되어야지, 강압적인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곱째, 하나님을 경배, 나를 낮춤, 나를 위한 기도, 다른 이를 위한 기도, 감사 기도 등 여러 가지 유형의 기도는 기도 시간을 더욱더 풍성하게 해준다. 여덟째, 경건의 시간을 다양하게 보내는 것도 좋다. 시간 전체를 찬양하며 보내거나, 찬양을 들으며 따라 부르거나, 시편을 읽으며 묵상하거나, 전날의 상황들과 그 가운데 보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되새겨 보는 등 경건의 시간에 변화가 필요할 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매일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기대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애정어린 확신을 갖고 나가야 한다.

이 소책자를 읽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경건의 시간을 내가 너무 의무적으로, 사무적으로 갖고 있지는 않았나 되돌아보게 됐다. “중요한 것은 실제 행동으로의 실천이지 마음의 원함이 아닙니다.” 라는 말이 많이 찔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경건의 시간은 꽤나 사무적이고 단방향적이었다. 마치 독서를 하듯이 성경을 읽고, 독서를 하다가 좋은 구절이 나오면 감탄하며 형광펜 그으듯 성경에 형광펜을 그었다. 또한 내 기도의 내용들은 무언가를 해달라는 요청 – 비록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들이었을지라도 – 이 거의 대부분을 이뤘다. 친한 친구끼리 나누는 즐겁고 기분 좋은 담소는 전혀 없었다. 이런 사무적인 관계를 지금까지 이어왔다니! 이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짐들과 일들을 자기에게로 가지고 나아오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사랑과 경배의 말을 듣기 원하십니다.” 라는 부분에서 많이 찔렸다. 이제 사무적인 관계에서 친밀한 관계로, 모세가 하나님을 친구처럼 대면하였다는 바로 그런 관계로 발전시켜야겠다. 하나님도 원하시고 나도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에, 벌써부터 하나님과 나와의 그런 관계에 많은 기대가 되고 흥분된다.


* 책 정보 *
제목 : 경건의 시간을 갖는 법 (How to Have a Quiet Time)
지은이 : 마이어즈 부부 (Warren and Ruth Myers)
출판사 : 네비게이토
ISBN : 89-375-0103-1
소책자 시리즈 중 42권

감상] More Than Conquerors

주기철 목사님은, 목회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시고, 그 중에서도 신사 참배에 대한 투쟁을 결심하셨다. 그리고 30대 초의 젊은 나이 때 “감히” ‘신사 참배 반대 결의안’ 이라는 것을 경남 노회에 정식으로 제출함으로 일본에 대한 첫 도전을 하셨다. 그리고 목회자들을 위한 수양회 때, ‘예언자의 권위’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는데, 일본 경찰들이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가 회개하라고 눈물로 외쳤는데 당신들은 오히려 악에게 아첨만 하고 있느냐고 목회자들을 강하게 꾸짖으시며 설교하셨다. 그 내용이 너무나 강했기에 일본 경찰들이 설교를 중단시키고 그 수양회를 강제 해산시키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산사 참배 반대 데모의 배후라는 이유로 첫 번째 구속을 당하시고, 신사 참배 찬성 결의를 하게 하기 위해 두 번째로 구속을 당하시며, 그 이후에도 수없이 많이 구속을 당하셨다. 그 때 주 목사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사모님과 교인들의 끊임없는 기도였던 것 같다.

일본 경찰들은 주 목사님을 파면시키려 산정현 교회의 장로들에게 압박을 가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예배 도중 일본 경찰들이 새로운 목사들을 데려다 놓고 예배를 진행하게 하였지만, 성도들은 그들을 무시한 채, 양재현 안수 집사의 인도에 따라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라는 찬송만 계속 불렀다. 그래서 결국 일본 경찰들은 산정현 교회를 폐쇄하기 까지 했고, 주 목사님 가족을 목사관에서 내쫓기까지 했다.

그 후에도 수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수차례 구속 받으셨다. 수감되어 있으시면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문을 당하시고 괴로워하셨다. 곧 주 목사님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형무소 소장이 주 목사님의 병원행을 강권하였으나, 주 목사님도 이를 거부하고, 사모님께서도 ‘당시는 꼭, 꼭 승리하셔야 합니다. 결단코 살아서는 이 붉은 문 밖을 나올 수 없습니다.’ 라는 말로 목사님의 순교에 대한 의지를 더욱 굳게 하여주셨다. 결국 사모님과 주광조 장로님이 함께 한 마지막 면회가 끝나고 5시간 후에 목사님은 숨을 거두셨다. 1944년 4월 20일이었다.




다른 과목 과제를 위해 중앙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펼쳤다. 과제를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꽤 오래 걸리길래 그 동안 뭘 하며 시간을 보낼지 생각하다가, 가방 속에 있던 “More Than Conquerors,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를 꺼내게 되었다. 설치가 끝날 때까지만 조금 읽고 나중에 마저 읽을 생각이었지만,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지금 이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게 될 것을 예감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일제 강점기에 주기철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고 신사참배에 항거하시다 순교하셨다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던 주기철 목사님에 대한 전부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주 목사님께서 어떻게 일제에 저항하시고 신앙을 지키셨는지 알게 되면서 내 마음이 뜨거워졌고 또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네” 한마디 혹은 고개 끄덕거림만으로 모든 고문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하며 끝까지 이겨내시는 그 모습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한 말씀이 떠올랐다. 히브리서 저자는 12장 1절에서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피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고 대항하여 함을 알려준다.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죄와 싸우기 위해서는 피를 흘릴 정도의 고통과 고난이 따라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난 연약한 인간이니까’ 하는 알량한 마음으로 죄와 쉽사리 타협해 버리는 게 나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많은 죄와 싸우고 많은 죄를 대적하지만, 나만의 연약한 영역에 있어서 만큼은 너무나 무력하게 칼을 칼집에서 꺼내지도 못하고 벌써 넘어져버리는 나의 모습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주 목사님도 나와 같은 인간이고, 주 목사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동일하게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내 죄악들을 이겨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차이점은 나는 주 목사님처럼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의 삶에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겪게 되는 시련과 고난이 있는가? 책을 읽으며 나에게 계속 떠올랐던 질문이었다. 아마 없는 것 같다.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삶에 게을렀던 나의 모습을 단번에 지적해주는 질문인 것이다. 주 목사님의 삶이 죄와의 철저한 싸움이었던 반면에, 나의 삶은 꽤나 평온해 보인다. 좋지 않은 평온함이다. 죄와 싸우고 고난과 싸우느라 피를 흘리고 힘겹게 신음하여 기도하며 마침내 승리함으로 기뻐 찬양하는 일들이 내 삶 속에 있어야 한다. 전도하다가 욕도 먹고 모욕도 당해야 한다.

내 영어 이름이 Paul 이다. 어학연수 당시 영어 이름을 만들려고 영어 성경을 뒤지던 중에 마음에 들어서 골랐던 이름이다. 한 달 전에 교회에서 있었던 부흥회 때 주님께서 “내가 괜히 Paul(바울)이라는 이름을 네게 준 것이 아니다” 라는 음성을 주셨다. 전도하지 않는 나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지적이자 큰 도전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통하여 나에게 또 한번의 큰 도전이 찾아온다. 나는 그냥 쉽게 쉽게 살다가 평범하게 천국 갈 것인가, 아니면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으며 온갖 죽음의 위기 가운데 구사일생하면서도 틈틈이 전도하는 그런 바울의 삶을 따라 갈 것인가.

책을 읽는 동안 자꾸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참느라 힘이 들었다. ‘내가 저런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 난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내 삶 속에서 틈틈히 전도하며 복음 전하기에 힘을 쓰길 원한다. 아직 전도라는 것을 제대로 해 본적 없는 부끄러운 나이지만, 이제는 변화하기 원한다. 변화 될 것이다. 내 안과 밖의 모든 죄악과 피 흘리기까지 맞서 싸우며,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온갖 고난과 수모도 마다하지 않는 내가 될 것이다. 전쟁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주님께 속했기 때문이다.


* 책 정보 *
지은이 : 주광조
출판사 : 대성닷컴
ISBN : 9788995490433

2009-01-24

목적지를 여쭈는 기도

목적지를 여쭈는 기도는 자칫 교만한 기도가 될 수도 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이런 기도 가운데에는 '빨리 알려주셔서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재촉과 '목적지가 이게 맞다면 난 지금 이러이러한 준비를 해야합니다' 라는 인간적인 계획의 주장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기도 응답으로 받고 난 후에 우리는 자칫 하나님을 은근히 배제하고 우리 뜻대로 준비하며 기획해 나갈 수 있다. 목적지는 알게 됐지만 사실 우리가 가는 길까지 아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길이 맞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뿐이다.

우리가 목적지를 응답받은 후에도 매 순간 길을 물어보며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성숙된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목적지를 알려주시는 때는 주님의 주권안에 있기에 우리는 일단 지금 어느 길로 가는 게 좋은지 여쭤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목적지는 모르더라도 지금 당장 좌회전 해야하는 지, 우회전 해야하는 지를 아는 것이, 자기 생각대로 결정지은 목적지와 길을 따라 사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자신감 있는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